추리의 여왕

KBS 드라마 <추리의 여왕>을 보았습니다. 이번주 종영했죠.


평범한 가정 주부의 이중 생활?


<추리의 여왕>은 비상한 추리 실력을 가진 가정 주부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유설옥은 남편의 사법고시를 뒷바라지 한 억척스러운 주부입니다. 하지만 본인은 고졸이에요. 현대의 학력 인플레이션을 생각하면 그녀가 원하는 만큼 공부하지는 못한 셈이죠. 결혼과 가정, 남편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한 전형적인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마냥 우울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에게는 비밀스런 취미 활동이 있거든요. 그녀는 범죄 수사물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수사물 덕후입니다. 지루한 일상과 지겨운 시집살이를 피해 자잘한 동네의 사건들을 해결하는 동네의 해결사입니다. 심지어 파출소 순경들 조차 그녀에게 의지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비밀스런 취미활동은 시어머니와 남편에게는 절대 비밀입니다. 그리고 그 시어머니 역할의 배우가 박준금입니다... 감이오시죠. 시어머니가 아무리 귀여워도 앞에 '시'자가 들어가면 편하기가 어렵죠. 뭐 이들 사이에는 그보다 좀 더 깊은 연민의 정이 존재 하긴 해요. 박준금이 시어머니 혹은 사모님 역할을 맡았던 이전 작들을 돌이켜보면 이 드라마에서 맡은 시어머니 역할은 그야말로 물러터진 편이긴 합니다만. 

주인공인 유설옥은 부모님이 자살한 과거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것이 자살이 아니라 사실은 타살이라고 믿고 있죠.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녀는 이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부모님이 관련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칩니다. 이게 그녀가 이 드라마에서 해야할 일인 것이죠.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으로는 하완승이라는 형사가 등장합니다. 그러고보니 요즘엔 경찰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많네요. 그는 사랑했던 연인이 실종된 과거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 배후에 자신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로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말 및 감상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드라마를 감상하지 않으신 분들은 건너 뛰세요!)


유설옥과 하완승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쿵짝을 맞춰 사건들을 해결해 나갑니다. 좀 전형적이긴 해요. 하완승에게 유설옥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입니다. 웬 아줌마가 자꾸 나타나서 사건에 참견을 하니까요. 그런데 이 아줌마 보통이 아닌 겁니다. 엇.하면서 조금씩 파트너가 되어가죠. 다소 전형적인 전개이긴 하지만 평범한 주부의 놀라운 추리실력이라는 컨셉이 충분히 재미있잖아요. 그래서 계속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 최고의 장점은 배우들입니다. 유설옥은 최강희가(넘 오랜만이에요!) 하완승은 권상우가 맡아서 연기합니다. 두 배우 모두 자기가 제일 잘하는 역할을 맡았어요. 그래서 그들의 연기가 마치 자신의 캐릭터를 복제한 것처럼 보이기는 해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습니다. 배우 본체와 캐릭터의 싱크로율이 몹시 높아서겠죠. 그밖에도 배우 이원근이 맡은 파출소장 홍준오와 막돼먹은 영애씨의 김현숙이 맡은 도시락집 사장 김경미 등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모두 유설옥 일당으로 드라마의 감초 같은 역할을 해요.

<추리의 여왕>은 하나의 사건이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는 형식으로, 드라마는 개별적인 사건들을 순차적으로 배치합니다. 그리고 이야기 전체의 커다란 줄기를 엮는 것은, 유설옥 부모님의 위장 자살과 하완승 전여친 실종 사건의 배후에는 모두 하완승 형사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로펌이 관계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유설옥 일당은 들은 결국 하완승의 아버지를 구속시키는 데에 성공하고, 경찰 내부에서 그를 도왔던 비리 경찰 고형사 역시 붙잡힙니다. 유설옥은 못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하완승은 본업인 경찰일에 충실하죠. 둘이 잘될지 어떨지는 모르겠네요. 이제 더이상 한국 시청자들은 주인공의 연애사에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습니다.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가 아닌 장르에서 조차 주인공 연애사에 오지랍을 펼치는 건 좀 우습기도 하고요.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추리극이니만큼 저는 셜록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좀 재미있는 추리 요소들이 등장하길 바랐습니다. 극 초반에는 그 부분이 흥미로워요.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흥미가 덜해집니다. 게다가 개별 에피소드의 속도감도 느린 편이에요. 몇몇 사건들은 답답할 지경입니다. 특히 극의 초반부 신선도에 비해 극 후반부에는 그냥 빨리 해결하고 드라마도 빨리 끝나길(...) 조금은 바라게 되더라고요.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하면 그 드라마의 수명은 거기서 끝인 겁니다. 이 드라마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조금은 아슬아슬하게 마무리 된 느낌이 있어요.

게다가 그들이 염원하던 고형사와 하대표의 검거가 속도감 있게 진행된 것은 마지막화 뿐입니다. 마지막화를 보고 있으면 대체 15화 동안 뭐했나 싶어요. 물론 다른 사건들의 이야기가 다뤄지고 있었지만 그 짜임새가 촘촘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는 거죠. 이것은 마치 한국 드라마의 전형적인 고질병 같아요. 시청자들은 일단 어느 정도까지 시청을 하게 되면 결국 끝까지 보게 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확보된 시청률 덕분에 제작진도 함께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는 아쉬운 느낌입니다.

그래도 경찰과 민간인들이 일당이 되어, 일을 꾸미는 내용은 좋았어요. 새롭진 않지만 캐릭터들의 개성이 재미있어서 그런지 아기자기한 느낌도 조금 들었고요. 범죄 수사물 치고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덜 했던 점도 장점입니다. 아마 이런 가벼움 때문에 범죄 수사물에서 잘 포섭하지 못했던 시청자 층도 이 드라마를 보게 만든 것 같고요. 그리고 최근 종영된 범죄물 드라마 중에서는 코믹한 요소도 제법 많은 편이었습니다. 초반에 너무 기대하게 만들었던 것 치고는 아쉽지만, 제게는 그냥 딱 평타를 친 것 같은 드라마네요. 그래도 잘 봤습니다!


'드라마와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년 6월_요즘 보는 드라마  (0) 2017.06.24
지정생존자-2  (0) 2017.06.10
귓속말  (0) 2017.05.27
터널  (0) 2017.05.27
빨간 머리 앤  (3) 2017.05.24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