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미드 <빨간 머리 앤>을 보았습니다. 간만에 넷플릭스에 들어가보니 이 드라마가 편성되어있더라고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 드라마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간 머리 앤>의 이야기예요. 이미 결말이 다 나와있는 셈이죠. 다만 제목은 원작과는 조금 다르네요. 소설의 제목은 <Anne of Green Gables/초록 지붕집의 앤>이지만 넷플릭스에 편성된 드라마 버전의 제목은 그냥 <Anne>이에요. 더 정확하게는 <Anne With an 'e'>이죠. 이름에 'e'가 들어가는 앤..정도의 의미겠죠. 물론 한글 제목은 둘 다 <빨간 머리 앤>이지만요. 앤은 자기 이름이 너무 평범해서 불만입니다. 그녀에게 위안이 되는 한가지는 자신의 이름 마지막에 들어가는 철자 'e'거든요. 그래서 자기 소개를 할 때면 늘 마지막 'e'까지 발음해달라고 부탁해요. 어렵지 않은 부탁이지만 사실 어려운 부탁이죠.ㅎㅎ


<줄거리>

줄거리에는 결말 내용이 등장하고, 그에 따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작이 존재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줄거리를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다만 소설의 버전과는 디테일이 조금씩 다르긴 해요. 아직은 시즌1만 공개되었기 때문에 이후의 이야기가 원작을 충실하게 따라갈지 어떨지는 모르겠어요. 실제로 드라마에서도 원작과는 조금 다른 각색이 존재하거든요. 대세에 영향을 줄만큼 의미있는 정도는 아닙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드라마이지만 이야기 속의 배경은 캐나다죠. 중간에 메릴라가 진보적인 여성들의 모임에 나가기도 하고, 서프러제트나 페미니즘이 잠깐 언급되기도 해요. 시대적 배경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전환되는 즈음일거예요. 

메릴라 커스버트와 매튜 커스버트 남매는 남자아이를 데려와 기르기로 합니다. 나이든 그들을 대신해 집안의 일을 해줄 아이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만나기로한 기차역에 가보니 건강한 남자아이는 커녕 주근깨 빼빼마른 여자아이가 있었던 거죠. 아이를 돌려보내려던 커스버트 남매는 결국 앤을 기르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되기'가 이 드라마 전반부의 중요한 이야기가 됩니다. 그 전반부가 바로 이 드라마의 시즌1인 셈이고요. 원작의 이야기를 어린 시절에 읽은 기억이 있는데, 애니메이션이 더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잖아요.ㅎ 그래서 인지 원래의 이야기가 사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아요.


어쨌거나 이 미드 버전의 <빨간 머리 앤>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점을 꼽으라면 저는 주인공인 앤 역의 배우라고 말하고 싶어요. 마치 소설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 같습니다. 배우의 이름은 에이미베스 맥널티이고, 이 드라마에서 부족한 데 없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맥널티 버전의 앤을 계속해서 보고 있으면 정이 가요. 각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배우 자체의 역량이 몹시 크게 느껴집니다.


드라마는 우리가 아는 이야기보다 훨씬 어둡게 각색되었습니다.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요. 어쨌든 앤은 모든 걸 이겨내지 않습니까.ㅎ 빨간 머리 앤의 일본버전 애니메이션의 팬이라면 조금은 당혹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도 어쨌든 원작이 아닌걸요.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던 장점이 없다고 해서 드라마가 나쁘게 평가될 필요는 없죠. 드라마 만의 장점도 있는 것이니까요.

앤은 보육원에서 나와 다른 가정에 입양되고, 그 가정에서 학대(?) 받는 과거가 잠깐 나와요. 앤이 상상 속의 세계에 집착하게 된 성격의 배경을 설명해주죠. 그리고 이런 과거가 커스버트 남매를 만나 새로운 가정을 찾는 이야기에 조금 더 몰입하게 하는 것 같고요. 

드라마는 대체로 잔잔하게 진행되지만 그 안에서도 나름의 사건이 진행됩니다. 일단은 커스버트 집안에서 앤의 정체성이 조금 애매해요. 부리기 위해 온 것인지 입양된 것인지 분명하지 않거든요. 커스버트 남매의 입장에서는 원하던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곤혹스럽기도 했을 것이고요. 어쨌거나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의미있는 것은 가족에 대한 고찰입니다. 메릴라와 매튜는 부부가 아니고 남매입니다. 앤도 혈연이 아니고요. 츤데레인 메릴라와 다정한 매튜, 그리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춘기 소녀 앤. 이들이 조금씩 가족이 되어가는 모습이 꽤 볼만합니다. 때로는 미소가 번지기도 하고요. 가족이란 반드시 혈연에 의해서만 구성되어지는 것인지하는 진보적인 질문도 포함해서요. 물론 21세기적 해석이죠. 몽고메리가 그 점을 염두해두고 소설을 썼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보다는 한 소녀의 성장기에 무게를 실은 이야기일 것입니다만.

그리고 앤이 커스버트 가족들을 변화시켰듯이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나,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가 변하는 것도 재미있는 요소입니다. 그래도 가장 신경이 쓰이는 이야기는 역시 길버트와의 이야기겠죠. 이 미드 버전에서는 길버트와 앤이 원작 소설에서보다 꽤 빨리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것 같아요. 소설에서는 둘이 화해하는 데에만 이야기가 전부 소비되니까요. 시즌2에서는 둘이 어떤 긴장감 혹은 케미스트리를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시즌1은 총 7화로 이루어져있고, 표면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앤이 커스버트 집안의 가족으로 스스로를 정체화하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시즌2를 궁금하게 하는 긴장감도 살짝 있고요. (악당 같은 놈들이 이 초록 지붕집에 위장 하숙을 합니다!!...이 시점에서 끝나버림..;) 그리고 앤과 길버트가 어떻게 자랄지 궁금하기도 해요.



개인적으로 최고의 장면을 꼽자면, 병을 앓고 있던 아버지가 죽고난 후에 길버트가 손바닥에 닿아 녹아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제게는 가장 묵직한 장면이기도 했고요. 배우가 훈훈한 것은 덤입니다.


<빨간 머리 앤>시즌1 = 주행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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